[조선일보]"마음의 눈으로 본 세상 그렸어요"

마음의 눈으로 본 세상 그렸어요"

윤형준 기자

- '갤러리쿱' 특별한 전시회 시각·지적장애 가진 정하영양 등 7년간 만든 작품 중 15점 전시 우리들의 눈·엔비디아 도움 손길 "서툴지만 그들만의 예술성 보여"

서울 서초동의 미술관 '갤러리쿱' 한쪽 벽면에는 동그라미 수백 개를 겹쳐 그린 도화지 9장이 붙어 있다. 형형색색 색연필로 그린 원(圓)들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그림이었다. 언뜻 봐서는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이 그림 제목은 '얼굴들'이다.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는 정하영(12)양이 이 그림을 그렸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全盲)인 소녀가 이 그림들을 완성시키는 데엔 7개월이 걸렸다. 처음에는 정양이 다니는 맹학교에서 색연필을 쥐여주면 곧바로 집어 던지고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6개월쯤 지나자 소녀는 기적처럼 색연필을 들었다. "사람들 얼굴이 보고 싶어요" "회전목마가 타고 싶어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원을 그렸다. 무의미해 보이는 도화지 속 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자 '회전목마'였다.

시각장애인 정하영양 등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들을 모아 서울 갤러리쿱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그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던 강사들이 전시된 작품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닫힌 정양의 마음을 연 건 비영리단체 '우리들의 눈'과 그래픽카드 제조업체인 '엔비디아' 소속 대학생 서포터즈였다. '우리들의 눈'은 1996년부터 맹학교에 재능 기부 형태로 예술을 가르치고 있는 단체다. 전업 예술가 10명이 일주일에 한 번 맹학교에서 미술 교육을 한다. '엔비디아'는 대학생 서포터즈를 꾸려 '우리들의 눈'이 하는 수업을 돕고 있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혼자서는 미술 도구를 잡는 등 간단한 일도 할 수 없어 도우미가 꼭 필요하다. 맹학교 봉사는 기본이 1년이다. 몇 달의 봉사만으로는 장애 때문에 '마음의 눈'까지 닫힌 학생들을 가르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양의 교육을 담당했던 '우리들의 눈' 이연규(25) 매니저는 "처음 6개월간은 하영이와 친해지기 위한 노력만 했다"라며 "하영이의 관심사나 평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꾸준히 대화를 주고받으니 어느 순간 닫혔던 하영이의 말문이 트이더라"고 했다. 지난 12일 끝난 이 전시회에는 정양 같은 시각장애 학생이 만든 예술품 15점이 전시됐다. 2010년부터 7년간 시각장애 학생들이 만든 작품 중 일반에 공개할 만한 걸 선별한 것이다. 지식과 상상으로만 만든 코끼리 조각, 시각장애·청각장애 학생이 서로 소통해가며 만든 석고 작품, 친구의 꺼끌꺼끌한 뒤통수를 손으로 느껴가며 찍은 사진…. 서툴지만 시각장애 학생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회화를 전공하고 한빛 맹학교로 교육 봉사를 나가고 있는 이진(43)씨는 "현직 예술가인 우리도 장애 학생들의 발상을 보고 배울 때가 많다"며 "또 다른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학생들에게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전시회는 '재능 기부'로 이뤄졌다. 한국화가협동조합이 '시각 장애 학생들이 미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료로 갤러리를 빌려줬고 '우리들의 눈' 교사와 '엔비디아' 서포터는 전시 설명을 해주는 '도슨트'를 자처했다. 갤러리 입구 맞은편엔 성(城)과 병정을 찰흙으로 빚어낸 작품이 전시돼 있다. 시력을 잃기 전 느꼈던 '레고'의 감촉에 대한 기억만으로 빚어낸 조각이다. 조각 옆엔 학생이 직접 쓴 작품 설명이 있었다. "레고를 제일 좋아했어요. 시력은 점점 사라져갔지만 그때 만져본 레고 사람의 기억은 아직 그대로예요. 기억이 시력보다 더 센 것 같아요."(한성현 '성을 지켜라')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15/20160715000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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